
[주거경제신문=정태기 ]
이촌새마을금고는 서울 내 새마을금고 중에서도 규모가 큰 우량 금고로 꼽힌다. 이 같은 성장에는 부촌인 동부이촌동이라는 지역적 배경도 있지만 김동철 이촌새마을금고 이사장의 역량이 크게 작용했다. 체육관 관장으로 시작해 광산업, 무역업 등을 거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사업을 이끌어가는 힘이 됐다. 획기적인 성장을 이끈 김동철 이사장은 “이제껏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며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 새마을금고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 삶에서 빚어진 철학을 직접 들었다.
- 이촌동에 어떻게 자리를 잡으셨나요.
“1971년도에, 그러니까 제가 총각 때 여기에서 태권도장을 했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곳이 제 발판이 됐죠. 제가 선수 생활을 하다가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뒀거든요. 선수로는 오래 못 뛰었지만 태권도장을 하면서 성과도 많이 냈고, 제자들도 많이 배출했습니다. 세계 챔피언도 나왔으니까요. 조그마한 체육관이지만 전국대회에서 4위까지 진출했습니다.”
- 체육인 출신의 기업인으로 아주 성공을 하셨네요.
“성공이랄 것이 있을까요. 그래도 태권도라는 큰 틀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보니까 전국적으로 형성된 네트워크의 도움은 받았어요. 어디 가서 힘든 일 얘기하면 어떻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연결이 되곤 했으니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서 힘든 때에도 잘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광산도 하고 무역도 할 수 있었지요.”
- 새마을금고에서 일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1969년이었나… 그때쯤 이곳 새마을금고에서 사고가 있었어요. 이사장이 갑자기 보따리를 싸서 도망을 갔죠. 그 사람이 구속되고 했는데, 새마을금고에 제 돈이 있었는데 안 주는 겁니다. 사람들은 ‘기다리자’라고 하는데 저는 젊은 혈기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찾아가서 소란을 피워 공론화를 시켰죠. 그게 이슈가 되어서 지역 인사들이 수습하는 과정에 저를 참여시켜줬습니다. 그때 정부에서 1억 원 무이자로 받아서 그걸로 동네 사람들 예금 다 찾아주고 그랬는데, 그때 제가 중간중간 악역을 좀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해서 피하지 않고 앞장을 섰던 거죠. 그렇게 연결이 됐다가 나중에 한 20년 전부터는 감사로 참여를 하고, 사업하면서는 주민자치위원장도 하면서 깊이 들어오게 됐습니다.”
- 지역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오래 전부터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뭐 자랑은 아닙니다만, 제가 이 나이에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청년 때부터 체육관을 하면서 그게 바탕이 되어서 인맥을 쌓았던 거니까요. 내가 성공해서 물질로 크게 베풀지 못 하더라도 이 지역에서 환원 사업 할 수 있는 부분이나 지역 서비스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리 금고는 작지만 일찍부터 지역 환원 사업에 앞장서 왔지요. 연말이면 한 4000~5000만 원은 우리가 환원 사업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 작은 금고라고 하셨지만 자산이 3000억 원 가깝게 되는 우량 금고 아닙니까.
“저희들에겐 자산 2800억 원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동부이촌동이라는 동네를 바탕으로 자산을 올리려면 얼마든지 올릴 수 있어요. 하지만 여수신 균형이 맞지 않으면 적자가 나잖아요. 그걸 맞추려다 보니까 신중한 겁니다. 시설적인 부분은, 제가 들어와서 동부지점을 새로 열었어요. 확장을 한 건데, 거기에 투자가 많이 됐습니다. 아마 지점으로서는 시중 은행도 그만한 시설을 가진 곳이 별로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시중 은행보다 새마을금고는 좀 낮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그래요. 그 이미지를 탈피하려면 보기에도 믿음을 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기왕 하는 거, 좀더 시설을 잘하자’ 해서 최대한 좋게 만들려 했지요.”
- 이촌새마을금고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저희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수산물 대출을 합니다. 약 20년 넘게 했는데, 새마을금고에서는 우리 금고에서 최초로 한 것입니다. 이제껏 사고 한 건 없이 큰 효자 노릇을 하고 있어요. 수산물 같은 경우는 에이전트(보증업체)가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물품검수 및 관리를 하고,
그 고객이 물건을 들여올 때 수입 원장이라든지 필요한 자료들을 제출하면 우리가 거기서
60% 정도 대출을 해줍니다.”
- 그에 대한 노하우도 축적이 됐겠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이사장이 되면서 보완할 부분을 더 완벽하게 보완해서, 120억 원 정도 규모로 하던 것을 이제 300~400억 원 규모로 합니다. 부산에 출장소를 두고 직원을 내려보내서 관리를 하고 있고요.”
- 이사장으로서 보시는 새마을금고의 해결할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시중 은행도 마찬가지로 전부 어렵습니다. 특히 새마을금고 같은 경우는, 쉽게 말하자면 적이 많습니다. 중앙회에도 이미지 개선을 위한 홍보도 부탁하고 합니다만, 그쪽에서도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새마을금고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많은 곳들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한두 곳 적자가 날 때도 있고, 흑자가 될 때도 있죠. 그런 걸 하나 가지고 꼭 금고가 당장 망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나오니까 답답합니다. 요즘은 대출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살림만 각각 열심히 하는 것이지, 관리감독 및 검사는 중앙회에서도 다 합니다. 대출을 해주고 싶어도 여신규정도 그렇고 전산에서 자동거절이 돼요. 그만큼 기준이 확실히 잡혀있습니다.”
- 이촌새마을금고의 성장에는 이사장님의 역할이 크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장시키실 수 있으셨습니까.
“이제는 동네일만으로는 안 됩니다. 시대가 달라지고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이 규모의 수준에 맞추려면 대출도 나가야 하는데 동네에서 2800억 원 규모로 어디에 대출을 해줍니까.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우리 동네의 일은 실무 책임자들이 책임지게 하고 저는 외부 일을 끌어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동네에서 제가 아는 사람은 직원들도 다 알아요. 저는 체육인으로 어려운 시기를 함께 살아온 인맥들을 전부 내 고객으로 끌어들인다는 걸 제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가 이 금고를 1650억 원에 인수 받아서 지금 규모로 키웠습니다.”
- 끝으로 새마을금고를 바라보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새마을금고는 외국 자본이 아닌 토종 금융기관이라는 점입니다. 이촌새마을금고는 안전한 자산관리뿐만 아니라 높은 이자 및 배당금으로 지역주민의 자산관리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새마을금고는 지역 단독 법인입니다. 이촌새마을금고는 이촌동 주민들의 자산인 것입니다. 이 자체가 새마을금고를 사랑해주시고, 이용해주실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새마을금고를 믿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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